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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지석 (josh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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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미우리 자이언츠 홈개막-3차전 관전 (4. 5)   2009/04/07 12:03 추천 0    스크랩 0

작년에는 다저스타디움에서 LA다저스의 시즌오프너를 보게 되더니 올해는 일본 프로야구 개막경기를 볼 기회가 생겼습니다. 환율이 아직 충분히 내려앉지 않아 미국까지는 부담되던 차에, 올해는 이승엽 선수의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히로시마 카프의 개막 3연전 중 3번째 경기를 관전하러 지난 주말 일본에 다녀왔습니다.

 

도쿄돔.JPG

 - 경기전 양팀의 훈련모습

 

이제는 여러번 방문하다보니 어느정도 적응됐지만 도쿄에 처음 오는 사람들은 역시 복잡한 철도노선을 이용하려면 상당히 애를 먹죠. 스이도바시 역에 내리면 자이언츠의 경기가 있는 날엔 교진 유니폼을 입은 팬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특히 나이드신 팬들이 많이 눈에 띕니다. 이들을 따라 10분쯤 가면 도쿄돔에 도착합니다. 경기시작 3시간 전에 도착한 도쿄돔에는 아직까지 WBC 2연패의 기쁨을 이어가려고 노력이 곳곳에 보였습니다. 지하철에서도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이치로의 사진이 눈에 띄더니 도쿄돔에 입장할 때는 자이언츠 안내 책자와 함께 WBC 우승관련 요미우리신문 호외판을 나눠주더군요. 하라감독이 대표팀 감독을 맡아 우승까지 했으니 아무래도 이들에게는 특별하겠죠. WBC결승전이 다시한번 아쉬워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요미우리_호외.JPG

- WBC우승 관련 요미우리신문 호외

 

 도쿄돔 안에 들어서니 자이언츠 선수들이 경기전 연습중입니다. 조각조각 천정을 가린 도쿄돔의 내부는 예전 몬트리올 엑스포스의 경기장이었던 올림픽 스타디움의 기억을 새삼 떠오르게 합니다. 들어서자마자 두 가지가 눈에 띕니다. 일본 피겨스케이트 선수인 아사다 마오의 광고가 도쿄돔 내의 전광판을 통해 자주 나오고 있었습니다. 일부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김연아 선수의 잦은 광고출연이 아사다 마오에게도 같은 이야기인가 봅니다. 실제로 이번에 머물던 이틀동안 마오의 광고를 꽤 여러 곳에서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진로_광고.JPG

- 왼쪽의 고정광고판 이외에 쉬는시간을 이용한 진로 영상광고도 볼 수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전광판 옆에 붙은 진로 광고판입니다. 작년부터 도쿄돔에 설치된 이 광고판은 올해도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국내에서는 경기불황과 함게 소주판매도 늘었겠지만, 일본에서는 작년에 진로소주의 매출이 두 배 이상 늘었다 하니 이 광고판도 어느정도 기여를 했지않나 싶습니다.

 

토노_부상.JPG  토노[1].JPG

- 1회초, 타구에 맞은 선발투수 토노                               - 토노는 이날 7이닝 무실점의 호투를 보였다.

 

이날 경기는 결과적으로 기대와는 달리 상당한 졸전이었습니다. WBC에서 돌아온 선수들은 대체로 컨디션이 좋지 않을 것이라 쳐도, 그 이외의 선수들까지 대부분 부진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라미레스만이 날카로운 스윙으로 타구를 날려댔을 뿐, 관중석에서도 간간히 비웃음과 욕설이 나올 정도로 번트, 도루 등 작전이라는걸 시도할 때마다 실패의 연속이었습니다. 특히 요미우리는 마무리투수 마크 크룬이 의외의 모습을 보이면서 다 잡은 승리를 놓쳤죠. 몸풀 때부터 전광판에 155km/s를 찍던 크룬은 막상 타자를 상대하자 스트라이크 던지는 법을 잊은듯 보였습니다. 컨트롤이 엉망인 투수의 모습을 확인하고서도 정석대로 희생번트를 대는 히로시마의 작전을 보면서 역시 일본야구다 싶었습니다. 9회 초에 라미레스를 빼고 좌익수를 교체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라미레스는 미국이나 일본이나 대단한(?) 수비실력을 자랑하죠.) 아무튼 아직 첫경기라 속단은 금물이지만, 마무리투수가 첫경기부터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하라 감독으로선 참 유쾌하지 못한 일입니다.

 

히로시마_응원.JPG  자이언츠_응원단[1].JPG

- 광적인 히로시마 응원단                                          - 비교적 차분했던 요미우리 응원단

 

경기보다 더 흥미로왔던 건, 양팀의 응원전이었습니다. 양쪽 홈런석을 차지한 두 팀의 응원단은 이날 12회 연장전이 끝날때까지 번갈아가며 목이 터져라 응원을 하더군요. 특히 히로시마의 응원단은 원정경기에서 자신의 팀에 기를 살리려 앉았다 일어났다 하는 퍼포먼스를 하는데, 보는 사람이 질릴정도로 대단하긴 합니다. 하지만 응원의 높낮이가 없이 한결같이 뜨겁기만 한 응원모습은 선수들에게 그저 하나의 음향효과정도만 느껴지지는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물론 없다고 생각하면 정말 썰렁해지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일본야구에서 볼 수 있는 일정한 모습의 집단 세레모니보다는 경기 흐름에 따라 함께 움직이는 일반 관중의 자연스러운 응원 쪽에 더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이승엽_전광판.JPG  이승엽_타격2.JPG

- 이승엽 타석 때 전광판에 등장한 이승엽 선수의 사진    - 희생플라이로 타점을 올리기 직전 타석에서의 이승엽선수

 

경기내내 이승엽 선수의 활약을 기대하며 경기를 지켜봤습니다. 몇몇 일본인들이 이승엽선수의 유니폼을 입고 앉아있는 모습을 보니 기분은 좋더군요. 전날 TV로 이승엽선수의 홈런장면을 보고 '오늘도 한방'을 기대하며 응원했지만, 역시 컨디션이 좋지 않은 모습입니다. 희생플라이로 타점을 하나 올렸고 그 덕분에 무승부로 경기를 마쳤지만 홈런까지도 아니고 찬스에서 단타 하나라도 날려주길 바랄만큼 이승엽 선수도 부진했습니다. 1루수로서 수비는 역시 굉장한 안정감을 보여줬지만, 그보다는 활발한 타격을 기대하시는 분들이 많겠죠. 개막 3연전의 부진을 뒤로하고 시범경기에서의 상승세를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으로 아사쿠사의 신사에 들러서 100엔짜리 기원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벚꽃.JPG

- 벚꽃이 가득한 아사쿠사 거리

 

 

채지석 객원기자  http://scblog.chosun.com/josh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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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경기장 전 구역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형형색색의 유니폼을 착용한 음료판매원들이었습니다. 대부분 20대 초반의 여자로 보이는 이들은 더이상 사먹지 않을 듯한 시간인 9회가 끝날 때까지도 끊임없이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웃는 얼굴로 판매를 합니다. 놀라운 것은 작은 병에 든 양주도 팔더군요. 급여를 받고 하는 일이겠지만, 힘들게 오르락내리락하면서도 미소짓는 얼굴이 너무나 안쓰러워보였습니다. 사진 몇 컷 올려봅니다.

 

음료판매1.JPG

음료판매2.JPG

음료판매3.JPG

- 경기장내 판매원들. 등에 큰 가방을 짊어지고 경기장 전체를 누비고 다닙니다.

 

 

채지석 객원기자  http://scblog.chosun.com/josh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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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L] 아버지가 망친 천재 - 에릭 린드로스   2008/12/29 02:11 추천 0    스크랩 0

지난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부통령 후보로 나섰던 새라 페일린이 자신을 '하키맘(Hockey mom)'이라고 불러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보통 자녀를 둔 소시민으로 자신을 빗대어 표헌한 페일린은 당시 큰 지지를 받았다. 미국, 캐나다의 링크장에서는 아이스하키를 하는 자녀들을 픽업해주고 장비들을 챙겨주는 보통 소시민 부모들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의자에 가만히 앉아 음료수 빨고 있는 자식의 장비를 벗겨주고 스케이트 끈까지 손수 매고 풀어주는 일부 부모들의 과도한 자식사랑은 우리나라나 그곳이나 매한가지긴 하다.

이렇게 쏟았던 자식사랑은 자녀가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는 성인이 되어가면서 그 목표를 상실하게 된다. 그 중 일부 부모는 시행착오를 겪으며 어른으로 성장해가야 할 자녀가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대신 쉽게 해결해줌으로써 자식사랑을 이어간다. 성인이 된 '아이'는 결과적으로 가시덤불을 손수 헤쳐주시는 부모님의 덕분에 편하게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된다. 과연 이 자녀는 아무 걱정없는 삶을 살고 있을까? 부모가 자신의 곁을 떠나는 순간 사회적 유아로 퇴행할 수 밖에 없는 처지다. 불행한 것은 그 현실을 제일 심각하게 깨닫고 있는 것은 바로 그 자신이다. 그렇다고 자신만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쳐오신 부모님께 별안간 독립을 외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보편적인 독립시기를 놓친 이들에게는 시간이 갈수록 이 굴레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NHL에서도 선수생활 내내 부모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던 불행한 선수가 있다. 지난해 은퇴한 에릭 린드로스다. 키 194cm, 몸무게 110kg의 린드로스는 그 체격에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스틱핸들링과 스케이팅 능력까지 가지고 있었던 두번 다시 보기 어려운 천재였다. 프로농구에 김승현의 센스, 방성윤의 슈팅, 그리고 서장훈의 키를 모두 갖춘 신인이 등장했다고 생각해보라. 말도 안될 것 같은 이 정도의 조합을 갖췄던 역사상 전무후무했던 선수. 린드로스는 말 그대로 '사기유닛'이었다.

하지만 린드로스의 NHL시절은 은퇴하는 그 날까지 잦은 부상, 그리고 하키팬들의 비난과 조롱으로 점철되었다. 그 불행의 시발점은 그를 너무나도 사랑했던 아버지이자 에이전트였던 칼 린드로스였다. 주니어시절 이미 하키계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했던 린드로스는 OHL(온타리오하키리그)에서 NHL 명예의 전당 멤버인 필 에스포시토가 구단주로 있던 수생트마리 그레이하운드에 드래프트되었지만 그의 아버지는 리그에 큰 물의를 일으키면서까지 결국 아들을 오샤와 제너럴스로 이적시켰다. 본인의 욕심보다는 아들에게 좋은 환경을 주고 싶은 아버지의 사랑이었겠지만 이것이 천재, 그 이상의 것을 갖추고 있던 린드로스의 인생을 잘못된 방향으로 인도한 불행의 서막이었다.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던 1991년 NHL 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린드로스는 전체 1순위가 당연시되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드래프트 전부터 자신의 아들이 첫 드래프트권을 가진 퀘벡 노르딕스(현 콜로라도 아발란치)에 지명되더라도 그곳에서 선수생활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공연히 말해 파장을 일으켰다. 웨인 그레츠키의 뒤를 이을 재목으로 사상 최대어라 불리던 신인 린드로스를 놓칠리 만무했던 노르딕스는 그를 지명했고, 그는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NHL 91-92시즌을 보이콧해버렸다. 이듬해 NHL사무국이 중재에 들어가면서 노르딕스는 울며겨자먹기로 그를 필라델피아 플라이어스로 전격 트레이드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발란치가 90년대 중반 이후부터 NHL의 강팀으로 자리잡게 된 것은 이 트레이드가 결정적이었다.) 아버지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던 이 과정을 거치면서 린드로스는 이기주의자로서 낙인이 찍혔고, 시작부터 많은 팬들이 그에게 등을 돌려버렸다.

 


90년대만 놓고 보면 린드로스는 분명히 리그 최고의 공격수 중 하나였다. 피터 포스버그를 포함해 유망주를 죄다 긁어다가 현금까지 얹어주고 데려온 제2의 웨인 그레츠키, 'The Next One' 린드로스에 대한 구단의 기대는 굉장했다. 그만큼 신인임을 감안해 줄 여유따윈 애초부터 없었다. 린드로스는 존 르클레어, 미카엘 렌베리와 함께 '리전오브둠'이라 불리던 공포의 라인으로 명성을 떨치며 97년에는 스탠리컵 결승까지 팀을 이끌었다. 하지만 기대가 과도하게 컸던 구단은 그 이상의 것을 원했고 린드로스는 잦은 부상으로 힘든 상황에서도 자신의 '원죄' 때문에 묵묵히 최선을 다했다.

 

 
전차와도 같았던 린드로스를 처음으로 무너뜨린 것은 피츠버그 펭귄스의 다리우스 카스파라티스였다. 오픈아이스 보디첵을 당해 18경기를 쉰 린드로스는 이후 매시즌마다 뇌진탕을 반복했음에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경기에 나섰다가 2000년에만 4번의 뇌진탕을 겪으면서 선수생활에 큰 위기를 맞았다. 본전 생각이 간절했던 보비 클라크 단장은 린드로스의 자세에 대해 불평하기 시작했고 아버지 칼 린드로스는 사사건건 문제를 제기하며 갈등을 일으켰다. 00-01시즌에 들어 이번에는 토론토 메이플립스로의 트레이드를 구단에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또다시 한 시즌을 포기해버린다. 결국 뉴욕 레인저스에 트레이드된 린드로스는 최고의 선수가 아닌 항상 부상을 달고 사는 그저 괜찮은 선수 중 하나가 되어버렸고 토론토를 거쳐 달라스 스타스를 마지막으로 가진 재능을 만개하지 못한채 34의 나이로 조용히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부상과 트레이드는 프로선수라면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것이었지만, 린드로스는 그 과정에서 언제나 언론과 팬들의 집중 조롱대상이었다. 초창기에 실력으로 잠재웠던 비난들이 여기저기서 다시 솟아나기 시작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부터 린드로스의 얼굴에는 미소가 사라졌고, 두려움에 찬 눈빛의 어두운 표정만이 남았다. 그의 얼굴에서 오랫만에 웃음을 볼 수 있었던 건, 은퇴기자회견장에서였다. 린드로스는 하키와 함께했던 나날들에 마침표를 찍어야 하는 아쉬움의 눈물을 보였지만, 동시에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감과 홀가분함으로 환한 미소를 띠었다. 늦게나마 처음으로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좀 더 일찍 홀로서기를 택했다면 어땠을까. 결과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자신의 삶으로서 즐겁게 하키를 했을 것이다. 그의 은퇴는 아직도 아쉽다. 


지난주 프로농구를 어수선하게 만들었던 서장훈 트레이드의 과정을 보면서 불행했던 천재 하키선수, 린드로스에 대한 기억들이 새삼 떠올랐다. 린드로스는 선천적으로 하드웨어와 기술을 고루 갖춘 최고의 선수였고 팀의 주축으로서 항상 상대팀의 심한 견제를 받는 타겟이 되었다. 일련의 사태로 하키팬들로부터 이기주의자로 비난받았다. 언제부턴가 경기 중의 그는 즐거워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마다 아버지가 나서서 언론과 구단을 상대로 마찰을 일으켜 일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고교시절부터 줄곧 한국 최고의 센터로 인정받아온 서장훈 선수의 현주소도 그다지 다를게 없다.

아버지의 그늘을 벗지 못해 끝까지 유약한 모습을 보였던 린드로스, SK 나이츠와 삼성 썬더스에서, 그리고 KCC에서도 아버지의 돌출행동으로 인해 수차례 당혹스런 상황을 맞아야했던 서장훈. 부모의 간섭 아래, 자신의 신념을 놓치면 돌아오는 건 팬들의 냉소와 외면뿐이다. 억울해할 일도 아니다. 팬들은 스포츠를 통해 최선의 노력으로 역경을 극복하는 모습을 확인하고 싶어한다. 팬들의 눈은 이를 정확하게 읽어낸다. 어디에 있든지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인정받는 것. 이 간결하고 명확한 진리를 부모는 자식에게 적용하기가 그렇게도 어려운 모양이다. 그 진리의 가치를 몰랐던 천재 린드로스의 마지막은 쓸쓸했다.

 




채지석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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