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이다. 월급쟁이부터 자영업자까지 허리띠를 졸라 매고 삶에 허덕이는 고된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이런 불황에도 경기를 타지 않는 장사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점집이다. 사주, 궁합, 운세 등 미래에 대한 사람들의 호기심은 불황에도 전혀 위축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더 알고 싶어 한다. 불안한 현실에 나의 미래, 나의 운명을 알고 싶어 하는 대중의 심리는 충분히 이해 할 수 있다. 하지만 나의 운명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알 수 없는 미래를 개척하려 하기보다 안심하고 걱정하며 정체되지 않을까? 제 8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무려 8관왕을 차지하며 주목 받았던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 이 영화는 한 소년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 이다. 이 소년은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다. 보살을 만난 것도 도사를 만난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는 누군가에게 전해들은 운명을 알고 그 길을 걷기보다 자신이 원하는 것, 꼭 이루어야 하는 것을 운명이라 굳게 믿고 그 길을 개척한다. 우리가 바라보는 운명과는 분명히 다르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매우 가치 있게 다가온다.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빈민가 출신의 소년 자말이 거액의 상금이 걸려있는 "누가 백만장자가 되고 싶은가"라는 퀴즈쇼에 참가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렸다. 일자무식 빈민가 소년이 퀴즈쇼의 최종단계에 까지 진출했다면 대다수의 사람은 의심부터 할 것이다. 하지만 자말은 자신 있게 대답한다. "나는 모든 문제의 답을 알고 있었다. 그것이 나의 운명이다"라고. 문제를 맞힐 때 마다 그의 상금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만 간다. 아담과 이브를 유혹에 빠뜨리는 뱀처럼 퀴즈쇼 진행자는 끊임없이 자말을 유혹하며 "더 도전하시겠습니까"를 외친다. 대다수의 사람이라면 이미 충분히 많은 상금을 획득한 상황에서 도전을 멈출 수 있다. 하지만 자말은 자신이 믿는 운명을 성취 할 때 까지 멈출 생각이 없다. 아직도 이루어야 하는 운명의 과정 중에 있기 때문이다. 의사, 변호사, 교수들도 풀기 힘든 문제들을 그는 거침없이 맞춰 나간다. 18년 동안 살아온 그의 인생의 경험이 모든 문제의 해답이 되었고 물론 운도 따랐다. 노력하고 진실로 원하는 자에게 운명은 나침반과 지도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퀴즈쇼 최종 단계의 문제 또한 그 과정일 뿐이고 충실했던 그의 삶은 운명을 이룰 수 있는 분명한 기회를 제공한다. 자신의 운명이 정해져 있다면, 그걸 미리 알고 있다면 세상이 얼마나 재미없을까? 하지만 이 영화는 말한다. 거저먹을 수 있는 운명 따윈 존재 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운명은 분명 정해진 길을 이야기 할 테다. 하지만 정해진 길도 우리가 나약해지는 순간 의심하는 순간 방향을 바꿔 버린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루고 싶어 하는 일들, 원하는 꿈들을 나의 운명이라고 믿는 것은 어떨까? 그리고 자말이 그랬던 것처럼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도전해보자. 그렇다면 운명이란 두 글자가 성취로 돌아왔을 때 나의 삶 속에서 있었던 모든 의문들이 퀴즈쇼의 답만큼이나 명확해 보일테다. 베이징 올림픽 유도 금메달리스트 최민호 선수에게 운명을 미리 예견해 줬다면 그의 지금이 여전히 빛나고 있을까? 혹 그는 처음 도복을 입은 날부터 올림픽 금메달이 자신이 성취해야 할 운명이라고 스스로 믿어왔던 것은 아닐까? < 엄동진 인터넷 객원기자 scblog.chosun.com/kjseven7 >
공포영화에는 그 강도나 살인 법칙에 따라 다양한 장르가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사지 절단, 장기 파열 등 원초적 잔임함으로 승부하는 '하드 고어'가 있고 사이코 살인마가 무차별 살인을 저지르는 '슬래셔'가 있다. '13일의 금요일', '나이트 메어', '헬레이져' 등으로 대표되던 고어와 슬래셔 무비들은 전성기라 할 수 있는 1980년대를 지나 그 자취를 감춰 버렸다. 마니아층에 비해 공포영화라면 치를 떠는 안티세력의 수가 너무 분명해 보였기 때문일 테다. 고심하던 공포영화도 나름의 방법으로 진화에 성공했다. '자이로드롭'은 죽어도 못 타겠다고 버티는 여자 친구에게 이건 덜 무섭다며 추천하는 것은 짜릿한 쾌감의 '롤러코스터'. '고어'와 '슬래셔'가 물러난 공포영화계의 선택은 잔혹함 보다는 스릴감 만점의 롤러코스터 같은 '캐주얼 호러'이다. 다소 낯선 '캐주얼 호러'라는 장르는 '나는 네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스크림' 등을 떠올리면 쉽게 그림이 그려진다. 공포영화의 거부감을 크게 줄였으며 롤러코스터를 타듯이 짜릿한 긴장감과 스릴을 극대화 하였다. 또한 아기자기한 스토리를 부각하고 섹시함을 노출해 모든 대중에게 부담 없이 접근한다. 지난 3월 13일 개봉한 '13일의 금요일'은 전형적인 캐주얼 호러 무비이다. 공포영화 특유의 잔인함보다는 스릴감과 섹시함으로 무장하여 데이트 무비로도 손색이 없다. 새롭게 리뉴얼된 '13일의 금요일'은 '트랜스포머'를 연출하며 헐리웃 최고의 흥행감독으로 손꼽히는 마이클 베이가 제작을 맡았다. 제이슨을 탄생시킨 오리지널 '13일의 금요일'의 감독 겸 제작자인 숀 커닝험이 제작자로 동참해 힘을 보탰다. 메가폰은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을 리메이크 하며 공포영화계에 혜성같이 등장한 마커스 니스펠이 잡았다. 면면이 화려한 역대 최강의 연출진이다. 헐리웃 청춘스타들의 출연도 눈에 띈다. 인기 미드 '슈퍼내추럴'을 통해 국내팬들에게 이름을 알린 자레드 페이다레키(극중 클레이 밀러)가 타이틀 롤을 맡았다. 안정된 연기와 섹시한 근육질 몸매로 배역에 잘 녹아들었다는 평이다. '디스터비아', '21' 등을 통해 감초연기를 선보인 한국계 배우 아론 유(극중 츄이)의 등장도 반갑다. 특유의 유머러스한 이미지로 출연한 그는 인상적인 연기를 펼치며 공포영화에 색다른 재미를 더한다. 1980년대 첫 개봉한 영화답게 2009년 판은 살인마 '제이슨'의 탄생배경을 설명하며 시작한다. 시리즈 전체를 보지 못한 관객들도 전혀 부담을 느낄 필요 없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끔직한 복수와 살아 돌아온 아들의 기막힌 과거가 짧지만 강렬하게 소개된다. 시간은 흘러 주인공인 클레이의 여동생과 친구들이 크리스탈 호수의 캠핑장을 찾는다. 캠프장을 찾은 이들은 모두 제이슨의 공격에 힘 한번 못 써보고 죽임을 당한다. 이어 실종된 동생을 찾으러 클레이가 크리스탈 호수에 발을 디디고 츄이를 비롯한 한 무리의 친구들이 휴가를 즐기러 합류하며 본격적인 금요일 밤의 파티는 시작된다. 1980년대 '헬레이져', '나이트 메어' 등과 함께 3대 공포영화로 불렸던 '13일의 금요일'은 과감하게 자신의 예전 모습을 지워냈다. 얼마나 끔직하고 잔혹하게 죽음을 묘사하는가에서 벗어나 어떻게 죽게 되느냐에 초점을 맞췄다. 희생자 한 명 한 명의 에피소드 마다 '죽음의 미학'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한 영상을 구현해 냈다. 또한 단순했던 스토리라인에서 탈피해 제이슨에게도 명분과 함께 어머니라는 약점을 주며 희생자들에게 반격의 기회를 제공한다. 슬래셔 무비의 부활을 기다려온 마니아들에게는 미안하지만 '13일의 금요일'의 변화는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아동용 공포영화로 전락했다는 뜻은 아니다. 영화관 곳곳에서 비명 지르는 소리에 귀가 따가울 지경이고 무엇보다도 이 영화는 여전히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유지했다. 자이로드롭을 못 타서 아쉽긴 하지만 롤러코스터의 짜릿함은 놀이동산 최고의 인기상품임에 변함없다. < 엄동진 인터넷 객원기자 scblog.chosun.com/kjseven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