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독립 뒤에 숨은 KBS 정연주씨의 어제와 오늘>
정연주 KBS 사장은 6일 기자회견을 갖고 "감사원 감사결과가 거짓과 왜곡으로 가득 차 있다"며 "감사원 해임 요구에 대한 효력정지 소송을 7일 내겠다"고 밝혔다. 정연주씨는 '국민께 드리는 글'에서 감사원을 비난한 뒤, 8일 해임을 논의할 KBS 이사회에 대해서도 "(해임을 의결해) 역사의 죄인이 되지 말라"고 했다. 검찰의 5차례 소환, 감사원의 4차례 소환을 무시하고 깔아뭉개온 '법(法) 위의 인간' 정연주다운 처신이다.
그러나 감사원 감사결과보다는 KBS 사장이 되기까지의 인간 정연주의 행적과 KBS 사장이 되고 나서의 그의 족적을 뒤쫓아보는 것이 그의 오늘을 판단하는 데 몇 배 도움이 된다.
정씨는 2002년 대선 때 한겨레 논설주간이었다. 그는 칼럼을 통해 "현역 3년 때우면 빽 없는 어둠의 자식들이고 면제자는 신(神)의 아들"이라며 야당 후보의 아들 병역문제를 거듭거듭 공격했다. 그 공로로 정씨가 KBS 사장이 됐다는 것은 모든 국민이 안다. 그는 2002년 어느 인사 아들의 미국 국적 취득이 문제됐을 때도 "특권적 행태를 보이는 인사가 고위직에 갈 수 없다"고 썼었다.
이런 정씨의 과거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겐 정씨의 두 아들이 미국 국적을 얻었고 정씨가 직접 워싱턴 한국대사관에 서류를 접수시켜 아들들 병역을 면제시켰다는 사실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제 눈의 대들보는 외면하고 남의 재 묻은 것을 천연스레 흉보는 인간성에 대한 놀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게 KBS 사장을 내놓아야 할 문제냐"고 버텼다.
정씨는 2005년 국정감사에서 아들 병역문제와 관련해 "아들들이 미국에 내린 뿌리를 뽑아 한국으로 옮긴다는 게 불가능했다. 아들들이 그립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것도 거짓말이었다. 정씨의 아들은 미국 국적을 이용해 삼성전자 해외인력 채용코스로 입사한 뒤 국정감사 발언 석 달 전부터 서울 본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제 몫을 챙기기 위해서는 연극도 서슴지 않은 것이다.
정씨는 2005년 적자가 예상되자 자신을 포함한 임원 임금의 20%를 자진 삭감했다. 그럴듯한 제스처였다. 그러나 해를 넘기자마자 되돌려 달라고 요구해 받아냈다. 2006년 그가 재임될 때 직원 82%가 반대했다. 이 정도면 웬만한 사람이라면 물러설 법도 한데 그는 KBS 정문에서 출근을 저지하는 직원들의 허(虛)를 찔러 주차장 '출구'로 차를 몰아 거꾸로 들어가는 과감성을 과시했다.
정씨는 자신을 기용해 준 정권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쳤다. 대한민국을 태어나서는 안 될 나라로 만드는 데, 건국 원훈(元勳)들을 일제(日帝) 앞잡이로 만드는 데 앞장서고, 국민의 전파를 이용해 반미·친북의 좌파이념을 온 나라에 확산시켰다. 북한을 드나들며 김일성을 수시로 만난 송두율씨가 대한민국 법정에 서게 되자 두 차례나 다큐를 만들어 '민주투사'로 칭송했다.
정씨는 자신에게 사장 자리를 준 정권이 탄핵위기에 몰리자 꼬박 이틀 동안 탄핵 반대 선동방송을 지휘했다. 언론학회 보고서가 "파괴적 편향성", 당시 KBS 감사(監事)가 "광적(狂的) 방송"이라고 했던 바로 그 방송이다. 그는 국민을 부자와 가난한 사람, 이 지역과 저 지역으로 갈라놓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나라 경제를 결딴내고 종신 집권을 꾸미는 남미 독재자 차베스를 미국과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영웅이자 대한민국이 따라야 할 모범으로 치켜세웠다.
그 정연주씨가 6일 자신을 지키려고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했다. 참으로 대단한 인간이다.
자진사퇴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대신 싸움을 선택했다. 정연주 KBS 사장은 감사원의 해임 요구를 ‘부당하며 위법’이라면서 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KBS 이사회가 해임안을 의결하면 역시 법정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공언했다. ‘5일은 감사원 치욕의 날’ ‘KBS 이사회는 역사의 죄인이 되지 말라’는 말까지 했다.
그가 내세운 명분은 ‘방송의 독립성’이었다. 정부가 그것을 무너뜨리려는 음모를 갖고 권력기관을 총동원해 자신을 몰아내려 한다고 항변했다. 이번 감사원 특별감사 역시 정치적 표적 감사인데다, 부실경영을 과장하고 인재발탁을 인사전횡으로 왜곡한 엉터리라고 단정했다. 그러면서 그 동안 KBS는 좋은 프로그램과 공정한 보도로 시청자들의 신뢰를 받아왔다고 주장했다.
온갖 압력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 역시 개인적 욕심이 아니라,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역사의 책무라는 것이다. 그가 감사원 결과에 반발해 어제 발표한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글’에는 착각과 오기가 가득했다. 자신이야말로 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지키고, 경영에서도 성공한 인물이라고 했다.
그렇게 당당하다면 왜 지금까지 감사원의 조사나 검찰의 소환에 계속 응하지 않았는지 알 수 없다. 그렇게 KBS가 공정성과 객관성을 유지했다면 왜 그 동안 대통령 탄핵방송 등 편파시비가 끊이지 않았는지 묻고 싶다. 공영방송은 일반 기업과 다르기 때문에 아무리 적자를 봐도, 그것이 결국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생각까지 서슴없이 드러냈다.
그의 주장대로 정부의 KBS에 대한 조치들이 억지이고, 그 속에 방송을 장악하려는 의도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그것이 자신의 정당성까지 담보해 주는 것은 아니다. 모든 법과 절차를 무시하고 변명만 늘어놓기에 앞서, 정 사장 자신이 낙하산 코드 인사가 아니었는지, KBS를 정권의 홍보수단으로 이용하지 않았는지 돌아봐야 한다. 공영방송이 정권의 소유물일 수 없듯이, 특정 색깔과 편향된 시각을 가진 사람들의 전유물일 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