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일 친선경륜 취재를 위해 일본을 다녀왔습니다. 한일 양국의 우수 경륜선수들이 예선전을 거쳐 우승자를 가리는 대회로 98년 이후 올해로 6번째 대회입니다.
올해 대회는 일본 사이타마현 세이브경륜장에서 있었는데요. 작년에 이어 올해도 한국이 우승했습니다.
경륜역사 60년의 일본에 비하면 이제 10년에 불과한 한국은 걸음마 단계나 다름없습니다만 경기 결과로만 본다면 선수 개인의 기량이 결코 일본에 뒤지지 않는 실력이라고 평가할 만 합니다.
경륜대회나 경륜결과를 소개하려는건 아니구요. 그곳을 다녀온 뒤 여러가지 감상중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 여운 한 가지를 얘기하기 위해섭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내내 사라지지 않는 것이 바로 경륜장을 찾은 관객들이었는데요. 경륜장을 찾는 분들은 사실 관객이 아니라 베팅을 하는 분들이죠. 한국에서도 마찬가지구요.
한국과는 달리 경륜장을 찾는 일본 고객들은 거의 대부분 60대 이상 80세 가까운 노인분들이더군요. 말로만 듣던 노년층 관객을 직접 눈으로 보고나니 여러가지 생각들이 교차했습니다.
경륜장에서 몇번만 베팅을 직접 해본 분들이라면 일본경륜에 대해서도 저 못지 않는 지식이 있을 줄로 압니다. 그리고 왜 일본에선 노년층만 주로 베팅을 하는지도 말이죠.
일본엔 경륜장도 꽤 많습니다. 그런데 50개 가까운 많은 경륜장 마다 4000~5000명 가까운 노년 고객들이 찾는다고 합니다. 물론 베팅을 하기 위해서죠.
노인들은 작은 손가방에 휴지나 손수건 담배 등 간단한 휴대일용품을 담아들고 경륜장에서 하루를 보내는데요. 점심은 도시락을 싸온 분들도 계시지만 대부분은 구내 매점에서 라면이나 우동 등으로 때우구요.
그리고는 저마다 돋보기를 쓴 눈으로 예상지를 들여다보며 베팅을 합니다. 한번에 100엔에서 무제한으로 베팅을 할 수 있지만 르 가까이서 지켜보니 대부분은 100~300엔이고 어쩌 400~500엔씩 거는 분들도 보였습니다.
우리로 치면 1000~2000원꼴로 베팅을 하는 것이죠. 점심과 담배 그리고 커피나 음료수 등을 사먹고 하루종일 베팅을 하려면 최소한 3000~4000엔은 들 것으로 보였는데요.
우리처럼 일주일에 하루 이틀이 아니고 매일 지하철을 타고 이곳저곳 경기가 열리는 경륜장을 찾아간다고 합니다. 물론 딸 때도 있지만 절반가량은 사실상 잃고 돌아가기 마련인데요.
제가 떠올린 특별한 느낌은 그들중 대부분은 젊어서 일본을 세계 경제대국으로 이끌던 주역들이었을거라는 감상이었지요.
세계 경제까지 좌지우지 하던 그들이지만 나이들면 결국 쓸쓸한 노후가 남아있을 뿐이란 생각 말입니다. 대부분 혼자 또는 노인 부부가 살며서 유일한 소일거리로 경륜장을 찾아 베팅하는 모습을 보니 참 안돼 보인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는 경륜담당을 하기 전까지는 솔직히 베팅도 할 줄 몰랐는데요. 일본 노인들의 일과중 하나가 베팅에 매달리는거 외에 특별한 소일거리가 없다는걸 생각하니 '혹시 우리도 나이들어 소일거리가 없어지면' 하는 생각이 듭디다.
젊어서는 경제적으로 좀 부족하고 없어도 그럭저럭 살아가는데는 지장이 없습니다. 하지만 늙어서 갈 곳없는 신세가 됐을때는 상황이 전혀 다르지요.
제가 벌써 그런 나이가 된 건 아니지만 근래 직장에서 조기은퇴니 조기퇴출이니 하는 불안한 대한민국의 고용실태가 가만 있어도 저절로 말을 해줍니다. '과연 황혼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하는 생각은 그래서 더 복잡하게 교차했습니다.
일본처럼 적어도 나이들어 경륜장을 오가며 베팅이라도 하려면 웬만큼 사회보장이 갖춰져야 그나마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 상황은 그 절반 만큼도 따라가지 못한 실정이니 더 걱정이지요.
일본 경륜장 풍경이 남산공원이나 종로 파고다공원에 모이는 우리 노인분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모습이긴 했지만, 한가지 다르다면 그쪽 노인들은 같은 황혼을 보내면서도 스스로 소일거리를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는 겁니다.
옷차림도 그리 초라하거나 남루해보이지 않았구요. 우리 보다 노년층이 압도적으로 많아서인지는 몰라도 아직도 일본에선 노년층이 일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예를들어 기업체 사장중에는 70이 넘은 분들이 꽤 많구요.
50도 안돼 직장에서 내몰리고 가정과 사회에서 버림받는 우리의 현실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본의 지금을 보면 머지않아 몰아닥칠 우리의 현실을 알 수 있습니다. 전후세대가 본격적으로 노인인구에 편입될 10년 이후엔 어떻게 될지 정말 암담하기만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