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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속의 그 시절      블로그형  게시판형
도봉산이 설악산으로 둔갑하던 시절   2007/07/22 22:37 추천 1    스크랩 0

젊은 날 잊고 싶은 기억들이 없는 사람이 있겠는가마는, 난 참말로 군대시절만은 잊고 싶다.

남자들 치고 군대 얘기하면 너나없이 시간 가는줄 모르고, 여자들 치고 남자들 군대 얘기하면 짜증 안내고 다 들어주는 여자 없다던가.

잊고 싶은 석삼년 군대, 그 지겹도록 괴롭던 군대는 묘하게도 지금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약이 되고 살이 되고 있는건 않을까. 따져볼 건 뭐 있나. 일단 그렇다 치고.

벌써 20여년전 얘기다. 논산서 4주간의 훈련을 끝내고 열차타고 북으로 북으로 내쫓긴다. 이미 알갱이는 이리 저리 다 빠지고 빈 쭉정이만 남았으니, 빽없고 힘없는 인생은 북쪽(최전방) 길이 상책이다.

다만 북쪽으로 향할뿐  목적지도 최종 기착지도 모른다. 그거야 어디 갓 작대기 한개씩 단 이등병 뿐이랴.  호송하던 기간병(軍人)들도 모른다.

막막하고 답답한 시간을 죽이느라 아무생각이 없는데, 어느 틈엔가 열차는 영등포를 거쳐 노량진과 한강철교를 건너고 있다. 어라? 이거 서울로 오네!

서울, 그렇다 서울이다. 하지만 반가움은 잠깐이고  빛좋은 개살구다. 열차는 잠시도 머무는 법이 없이 서울을 그대로 통과해 의정부쪽으로 달린다.

혹시나 서울 근교 어디에 배치되는가 싶어 안달하던 기대는 애시당초 꿈이다.

열차가 의정부 조금 못미쳐 망월사 역에 도착하더니 꼼짝을 않는다. 이놈의 열차가 가다말고 왜 멈추나.

잠시후 기간병들이 달려들어 빨리 내리라고 난리다. 바람빠진 공처럼 맥없이 앉아있던 이등병들이 혼비백산이다. 밤새 느슨하게 늘어졌던 군기가 얼음바가지 깨지듯 쨍소리가 난다.

그곳이 바로 101보충댄가 103보충댄가 기억은 잘 안나지만 신병들이 전방부대 배치전에 머무는 곳이다.

이곳서 이틀을 머무는데 말그대로 개백정 사람잡듯 한다. 딴엔 군기를 잡는답시고  연병장에 세워놓고 한다는 말이, '저 앞에 바라다보이는 산이 무슨 산인가?' 하고 묻는다.

시골깡촌 출신도 많아 그곳이 도무지 서울인지 의정분지 분간 못하는 넘들도 많겠지만, 나처럼 '이곳은 서울서 의정부를 좀 못가서 있는 도봉산자락'임을 아는 넘들도 많다.

나를 비롯해 몇넘들이 자신있게 대답하기를 '네, 도봉산임다!' 하고 목청껏 내 질렀다. 당연히 '그래 자~알 맞췄다, 도봉산이다! 넌 열외다!' 할줄 알았다.

어쭈? 근데 그게 아니었다. 기간병의 주둥이가 침을 탁 튀기며 '아니다, 틀렸다'고 선언을 해버렸기 때문이다. '아니, 저 자식이 이등병이라고 우릴 아주 바보로 아는가?'

그넘 한다는 말이 더 걸작이다. "내가 진짜 답을 가르쳐준다, 저 산은 바로 설악산이다! 모두 따라한다! 설악산!"  "네! 설악산!" 놈은 대답소리가 적다며 또 지랄발광을 한다.

“목소리가 적다, 오늘 점심 굶고 싶나, 다시 따라한다! 설악산!” 우린 목청이 터져라고 ‘설악산’을 내질러야 했다. “네!!! 설악산임다!!!”

여기가 어딘가. 군대다. 군대가기전에 내가 살던 서울 근처에 왔다고 그세 잠시 망각했을 뿐이다. 까라면 까는 곳이 군대다. 그 이후 도봉산은 적어도 나한테 만큼은 설악산으로 둔갑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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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한 유년시절의 추억   2007/07/14 11:04 추천 0    스크랩 0

 <내 어린날 추억속의 그곳, 다시 돌아갈 수는 없을까!>
 
 

몇살 때였을까나. 전깃불도 없는 시절이었으니 초등학교 4~5학년쯤이었을 것이다. 그땐 그을음이 모락 모락 피어나는 석유등잔불 아니면 남포등(洋燈)이 밤을 밝혔다. 이 보다 약간 수준이 높다싶은 촛불이래야 제삿날 아니면 명절때나 볼 수 있었으니 우리한테 어둠은 언제나 익숙한 친구이자 동무였다.

달밤이면 마을이 온통 시끌 시끌했다. 특히 보름달이 온 동네를 앞마당 삼아 미소지을때 아이들의 눈엔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곤 했다.  TV가 있나 컴퓨터가 있나. 헐! 전깃불도 없는데 웬 TV 컴퓨터 타령?

밤마다 마을 골목은 아이들의 뛰노는 소리로 온통 몸살을 앓곤 했다. 맨동희야! 노~올~자! 맹자야! 노~올~자! 달밝은 밤, 애초에 집에 퍼질러 있기도 좀이 쑤시지만, 밥때가 늦어 조금이라도 늦을라치면 동무들이 떼거리로 샙짝 앞에 몰려와 ‘노~올~자!’ 를 외쳐대니 견뎌낼 재간이 없다.

남자아이들과 여자아이들이 함께 어울리는 수건 돌리기도 흥겨웠지만 잊을 수 없는 특별한 우리들만의 놀이가 있었다. 일종의 술래잡기 같은 것이었는데 어둔 밤에 하는 술래잡기의 묘미는 정말 각별했다.  요즘 아이들이 알턱이 있나.

20여명이 어울려 편을 가르고, 한편이 숨으면 다른 한편은 찾는 게임이다. 무대는 들과 산을 제외하곤 동네 어디든 상관없다. 외양간이고 곳간이고 나뭇간허청이고, 눈만 돌리면 숨을 곳은 지천으로 널브러져 있다.

그렇다고 한번 숨으면 좀체 찾기 힘들 것도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대낮같은 달빛이 웬만한 움직임까지도 쉽게 드러나게 하는데다, 밤마다  헤집고 다니는 우리들만의 놀이터이다보니 어느 헛간에 쥐새끼 몇마리 사는 것까지도 훤히 꿰고 있다. 숨는 사람도 찾는 사람도 자연 박진감이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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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로 시작한 군대생활   2007/07/14 10:50 추천 0    스크랩 0

사내들이라면 어릴적 아이들과 골목에서 옥신각신 하며 놀다가 힘센 놈한테 이유없이 한 두 대쯤 맞아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피날 정도만 아니면 몇대 맞아도 울지 않고 잘 견디고 논다. 그런데 그곳에 갑자기 엄마나 형이 나타나면 찡하면서 눈물이 쏟아진다. 거참 묘하다.

종철이가 딱 그짝이다. 20여년전 군생활을 말하자면 난 내 고향마을의 종철이를 잊을 수가 없다. 갓 신병으로 자대에 배치되자 마자 난 나보다 세살 형뻘인 그 종철이 땜에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사실 종철이는 같은 마을에 살던 엄석대(이문열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주인공)같은 경철이한테 유난스럽게 핍박을 받은 착하고 순한 형이다. 경철이는 저랑 동갑내기 사촌간이면서도 왜 그렇게 종철이를 괴롭히며 꼬붕이기를 강요했는지 모른다.

암튼 벌써 까마득한 과거가 된 그 시절로 다시 가보자. 망월사역 부근 보충대에서 이틀을 머물고 25사단이 있는 파주의 신산리 어디쯤에서 또 이틀을 머물고 마침내 자대에 배치됐다. 25사 71연대다.

연대 예하부대로 별도의 캠프를 갖고 있는 대대에 배치됐는데, 이등병은 말 그대로 사람이 아니다. 아니 사람이어도 갓난 얘기쯤 취급당하곤 했다.

내무반에서도, 밥을 먹는 식당에서도, 아무 것도 자력으로 할 수 있는게 없다. 오직 관등성명만 큰 소리로 내질러야 한다. 지나가는 누구든 나한테는 고참이니 쳐다볼 필요도 없이 어깨만 툭치면 그저 '네! 이등병 강일홍!'이다.

요즘 군대는 고참이 불러도 가볍게 `네~' 하면 그만이란다. 졸병이라고 고참들 관물까지 정리하고 워커 광내는 일은 이미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이 됐다. 목청터져라 관등성명을 대기는 커녕 일병이 병장과 나란히 엎드려 TV를 시청할 정도라니 세상도 변하고 군대도 많이 변했다.

자대에 온지 이틀인간 사흘인가 됐는데 식당에서 한 병장이 가까이 오더니, '야! 이번에 배치된 신병중 고향이 해남 어디라는데 너 혹시 거기냐?' 하고 묻는다.

아니 뭐? 해남(海南)? 정신이 번쩍 든다. 그러나 어디 감히 하늘 같은 병장을 똑바로 쳐다본단 말인가.

지금 생각하면 그 개시키가 나를 넘넘 울렸다. 차라리 군기를 더 바짝 들게 하든지 할 것이지, 왜 그리 고향생각 형들 생각 나게 만들던고.

뭐라고? 해남이라고? 해남 어디? 뭐? 해원? 야, 정말 반갑다야! 난 중리다. 너 해원 누구 동생이냐? 뭐? 도용이? 야, 이거 미치겠네, 암튼 밥 많이 먹어라, 야? 김상병, 여기 고기반찬 많이 든걸로 한판 더 갖고 온나! 어쩌구 저쩌구...

말인즉슨 그 병장 넘이 바로 내 친형인 도용이와 친구였던거라(물론 종철이와도 친구). 근데 녀석 한다는 말이 나를 더 눈물 나게 했다.

야, 하필이면 내 군대생활 다끝나서 들어올게 뭐냐, 너 좀 보살펴 주려해도 일주일후면 난 제대다. 나 이거참!! 너 니 형 친구 종철이라고 알지. 나랑 여기서 3년 같이 근무했다. 종철이는 사령장 먼저 나와 일주일전에 나갔다. 나도 닷새 후면 나간다.

헐? 에구 에구 차라리 아는 척이나 말지. 낯설고 물선 휴전선 부근까지 떠밀려와서 앞날이 캄캄하기만 한데, 아직 사람도 아닌 이등병한테 그기 할 소리냐 이넘아!

군생활 다 끝난 당신이야 내가 안쓰러워 위로한답시고 하는 말이겠지만 나한텐 그 한 마디 한 마디가 비수(匕首)로 팍팍 꽂혔다 말이다.

나는 그날 남몰래 화장실에 가서 원없이 울었다. 일주일전에 제대했다던 종철이가 그렇게 위대해 보이고, 앞으로 견뎌야할 3년이 너무 멀어보였다. 암만 참으려고 해도 볼을 타고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내 힘으론 막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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