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 잊고 싶은 기억들이 없는 사람이 있겠는가마는, 난 참말로 군대시절만은 잊고 싶다.
남자들 치고 군대 얘기하면 너나없이 시간 가는줄 모르고, 여자들 치고 남자들 군대 얘기하면 짜증 안내고 다 들어주는 여자 없다던가.
잊고 싶은 석삼년 군대, 그 지겹도록 괴롭던 군대는 묘하게도 지금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약이 되고 살이 되고 있는건 않을까. 따져볼 건 뭐 있나. 일단 그렇다 치고.
벌써 20여년전 얘기다. 논산서 4주간의 훈련을 끝내고 열차타고 북으로 북으로 내쫓긴다. 이미 알갱이는 이리 저리 다 빠지고 빈 쭉정이만 남았으니, 빽없고 힘없는 인생은 북쪽(최전방) 길이 상책이다.
다만 북쪽으로 향할뿐 목적지도 최종 기착지도 모른다. 그거야 어디 갓 작대기 한개씩 단 이등병 뿐이랴. 호송하던 기간병(軍人)들도 모른다.
막막하고 답답한 시간을 죽이느라 아무생각이 없는데, 어느 틈엔가 열차는 영등포를 거쳐 노량진과 한강철교를 건너고 있다. 어라? 이거 서울로 오네!
서울, 그렇다 서울이다. 하지만 반가움은 잠깐이고 빛좋은 개살구다. 열차는 잠시도 머무는 법이 없이 서울을 그대로 통과해 의정부쪽으로 달린다.
혹시나 서울 근교 어디에 배치되는가 싶어 안달하던 기대는 애시당초 꿈이다.
열차가 의정부 조금 못미쳐 망월사 역에 도착하더니 꼼짝을 않는다. 이놈의 열차가 가다말고 왜 멈추나.
잠시후 기간병들이 달려들어 빨리 내리라고 난리다. 바람빠진 공처럼 맥없이 앉아있던 이등병들이 혼비백산이다. 밤새 느슨하게 늘어졌던 군기가 얼음바가지 깨지듯 쨍소리가 난다.
그곳이 바로 101보충댄가 103보충댄가 기억은 잘 안나지만 신병들이 전방부대 배치전에 머무는 곳이다.
이곳서 이틀을 머무는데 말그대로 개백정 사람잡듯 한다. 딴엔 군기를 잡는답시고 연병장에 세워놓고 한다는 말이, '저 앞에 바라다보이는 산이 무슨 산인가?' 하고 묻는다.
시골깡촌 출신도 많아 그곳이 도무지 서울인지 의정분지 분간 못하는 넘들도 많겠지만, 나처럼 '이곳은 서울서 의정부를 좀 못가서 있는 도봉산자락'임을 아는 넘들도 많다.
나를 비롯해 몇넘들이 자신있게 대답하기를 '네, 도봉산임다!' 하고 목청껏 내 질렀다. 당연히 '그래 자~알 맞췄다, 도봉산이다! 넌 열외다!' 할줄 알았다.
어쭈? 근데 그게 아니었다. 기간병의 주둥이가 침을 탁 튀기며 '아니다, 틀렸다'고 선언을 해버렸기 때문이다. '아니, 저 자식이 이등병이라고 우릴 아주 바보로 아는가?'
그넘 한다는 말이 더 걸작이다. "내가 진짜 답을 가르쳐준다, 저 산은 바로 설악산이다! 모두 따라한다! 설악산!" "네! 설악산!" 놈은 대답소리가 적다며 또 지랄발광을 한다.
“목소리가 적다, 오늘 점심 굶고 싶나, 다시 따라한다! 설악산!” 우린 목청이 터져라고 ‘설악산’을 내질러야 했다. “네!!! 설악산임다!!!”
여기가 어딘가. 군대다. 군대가기전에 내가 살던 서울 근처에 왔다고 그세 잠시 망각했을 뿐이다. 까라면 까는 곳이 군대다. 그 이후 도봉산은 적어도 나한테 만큼은 설악산으로 둔갑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