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뒷담화는 싫어하겠지요.
하지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말이 있듯, 그분의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면 제 한몸 희생해서 뒷담화 대상이 되 드리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제가 가장 싫어하는 대화 중 하나는 '이런 말 해선 안되지만'으로 스타트를 끊는 말들 입니다. 해서 안되는 말이면 하지 말아야지요. 길지 않은 인간관계를 맺다보니 늘 '꼭 할 말은 아닌데'라고 생각했던 대화에서 탈이 나더군요.

얼마전에 MBC '스포트라이트' 제작발표회에 다녀왔습니다.
손예진, 지진희, 진구, 조윤희 4명의 조주연급 연기자들이 참석했더군요.
좋아라했습니다. 손예진은 제가 지금껏 본 어느 연예인보다 천사같이 예뻤고, 지진희는 실물이 한 10배쯤 낫더군요. 그 아우라를 브라운관이 채 담아내지 못했던 까닭인 듯 합니다.
손예진-지진희, 진구-조윤희 2조로 배우들을 나눠서 인터뷰를 시작했습니다.

손예진과 지진희씨 인터뷰는 어찌 생각하면 판에 박힌듯 뻔한 얘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어떻게든 야마를 뽑아서 기사를 써야하는데, 참 실속 없는 인터뷰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뭐 대충 이런 얘기였어요. '기자님들은 정말 대단한 거 같아요. 기자 근성도 참 뛰어나시고.. 저라면 그렇게 못할 거 같아요.', '제가 은근히 성격에 독한 구석이 많아서 이번 역할도 잘 해내지 않을까요.'같은 얘기 말입니다.
진구-조윤희 조는 그에 비하면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마냥 재미있었습니다. 기자들에 대한 질타가 실랄하게 시작됐거든요.
"영화 얘기를 이만~큼 하고 여자친구 얘길 잠깐 했는데, 기사를 확인해보니 여자친구 얘기만 써놨더라고요. 그 기자를 나중에 다시 만났어요. 오히려 '담부턴 그런 기사 안써'라며 웃더군요. 정말 욱..(이부분에서 주먹을 불끈 쥐기도 했습니다)하더라고요."
"군대 다닐 때부터 기자들에 대한 반감이 너무 강했어요. 심지어 대장보다 기자들이 더 무섭다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술 먹고 깽판을 부리거나.."
등.. 진구씨는 정말 기자에 대한 반감이 너무너무 강해 보였습니다. 앞에 앉아있기가 무안해지더군요. 그저 씩 웃기만했는데 뭐 어떤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진구씨 말의 상당부분은 사실입니다. 특히 연예기자들이 많이 부끄러워해야할 일이라고 저도 나름 생각해왔고요.
하지만 그런 말을, 특히 주먹을 불끈 쥐는 제스처를 해보이면서까지 감정을 섞어 해야할 그런 말을 굳이 당사자들 앞에서 해야할 필요가 있었을까 의아스럽기도 했습니다.
입가에 고추장이라도 묻힌 것 마냥 찝찝한 기분으로 제작발표장을 나섰습니다.
진구씨 말에 기분이 상했다면 속 좁은 제가 잘못이지요. 잘못했다 잘했다를 떠나서, '아.. 대놓고 하는 말보다는 차라리 뒷담화가 백번 낫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한 21살쯤 넘어가면서부터는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는 게 도대체 쉽지가 않습니다. 각자 자신만의 껍데기를 마음에 칭칭 둘러대기 시작한 까닭이죠. 시간이 흐를 수록 껍데기는 딱딱하게 굳어만가고, 다른 사람과 깊은 공감과 우정을 나누기가 점점 더 어려워져 갑니다.
굳이 선을 넘어서려는 노력이 이제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필요한 것은 선을 넘거나 깨겠다는 용기가 아니라 각자의 껍데기를 상처내지 않으며 공존할 수 있도록하는 '기름칠'이 아닐까요.
저 같은 기자가 가진 단점, 모난 구석을 굳이 질타해 부숴내기보다는, 반드르르한 말이라도 제가 가진 가치를 온전히 인정해주는 편이 더 낫더군요. 굳이 비판을 해야한다면 좀더 유드리있는 방법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저도 그런 상대가 되고 싶고요.
간단히 말하면, '진구씨의 말에 별로 기분 좋지 않았다'는 옹졸한 얘기일텐데, 굳이 길게길게 풀어 썼습니다. 그냥 '기분 좋지 않다'고 단정지어 버리기엔 그냥 이런저런 생각이 너무 많이 든 탓입니다. |